초능력을 얻으면 제일 먼저 뭘 하고 싶으세요? 세계를 구하는 영웅이 되겠다고 답하는 분이 얼마나 될지 솔직히 의문입니다. 저도 막상 그 상황에 놓인다면 마블 히어로처럼 행동하기보다는, 먼저 주변 사람들을 놀려먹거나 제 욕심부터 채우려 했을 것 같습니다. 영화 크로니클은 바로 그 솔직한 가정에서 시작합니다. 2012년 개봉 당시 파운드 푸티지 장르와 히어로물의 조합으로 신선한 반향을 일으킨 작품입니다. 판타지를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판타지 영화를 보고나면 항상 했던 내가 초능력자라면? 이라는 그 생각..또 한번 더 하게 된 영화였던 것 같습니다.
## 파운드 푸티지 형식이 만들어낸 날것의 몰입감
파운드 푸티지(Found Footage)란 극 중 인물이 직접 촬영한 영상을 편집 없이 그대로 발견한 것처럼 보여주는 연출 기법입니다. 쉽게 말해, 배우가 직접 카메라를 들고 찍는 페이크 다큐멘터리 방식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블레어 위치 프로젝트나 REC 같은 공포 영화에서 주로 쓰이던 방식인데, 크로니클은 이걸 히어로 장르에 접목했다는 점에서 처음부터 달랐습니다.
제가 이 영화를 처음 틀었을 때,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화려한 CG와 배경음악으로 채워진 히어로물에 익숙해져 있던 터라, 손에 잡힐 듯 거친 화면 질감이 낯설면서도 이상하게 더 오래 기억에 남았습니다. 주인공 앤드류가 캠코더를 들고 자신의 불우한 일상을 기록하는 장면부터, 파티 중 우연히 발견한 싱크홀 안으로 들어가는 장면까지, 관객이 같이 그 자리에 있는 것 같은 느낌을 줍니다.
다만 이 형식이 양날의 검이라는 것도 직접 보면서 느꼈습니다. 인물들의 격렬한 감정 변화나 초능력 액션 장면에서는 화면 흔들림이 심해져 시각적 피로감이 꽤 누적됩니다. 영화 장르 연구자들 사이에서도 파운드 푸티지 기법이 몰입감을 높이는 동시에 관객의 신체적 불쾌감을 유발한다는 점은 오랫동안 논의되어 왔습니다([출처: 영국영화연구소 BFI](https://www.bfi.org.uk)). 특히 영화 후반부 도심 한복판에서 벌어지는 공중 격투 장면은 연출 의도는 충분히 이해가 가지만, 앉아서 보기 불편할 정도로 화면이 흔들립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 경험상 이 불편함은 오히려 영화의 긴장감을 배가시키는 장치로 작동하는 것 같았습니다. 예를 들어 염동력(Telekinesis), 즉 물체를 손대지 않고 정신력으로 움직이는 능력이 처음 발현되는 장면에서, 카메라가 흔들리며 잡아내는 레고 조각들의 부유 장면은 제작비 규모에 비해 놀라울 만큼 설득력이 있었습니다.
크로니클이 파운드 푸티지 장르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간 지점은 바로 나레이션(Narration) 구조에 있습니다. 나레이션이란 이야기를 전달하는 서술 방식을 의미하는데, 이 영화에서는 앤드류의 캠코더 외에도 다른 인물들의 스마트폰, CCTV, 뉴스 영상 등 다양한 시점의 영상이 교차 편집됩니다. 덕분에 파운드 푸티지 특유의 1인칭 한계를 어느 정도 극복하면서도 현장감은 유지되는 영리한 구조를 갖추고 있습니다.
## 앤드류의 흑화, 단순한 악당 서사가 아닌 이유
크로니클의 진짜 핵심은 초능력이 아니라 앤드류라는 인물입니다. 아버지의 가정 폭력, 어머니의 지병, 학교에서의 왕따. 이 세 가지가 한 사람에게 동시에 쌓인다면 어떻게 될까를 이 영화는 꽤 집요하게 파고듭니다. 제가 보기에 앤드류는 악당이 되려 했던 인물이 아니라, 단 한 번도 제대로 된 안전망을 경험해본 적 없는 소년이었습니다.
캐릭터 아크(Character Arc)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이는 영화나 소설에서 주인공이 이야기 흐름 속에서 심리적, 도덕적으로 변화해가는 곡선을 뜻합니다. 앤드류의 캐릭터 아크는 교과서적으로 설계되어 있습니다. 초능력을 얻은 초반에는 친구들과 함께 레고를 띄우거나 마트에서 장난을 치는 소소한 즐거움을 누립니다. 스티브라는 인기 있는 친구의 제안으로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고 추억을 쌓으려 하기도 합니다. 저도 그 장면들을 보면서, 조금만 상황이 달랐다면 앤드류가 어떤 사람이 되었을지 자꾸 생각하게 됐습니다.
그런데 분기점이 찾아옵니다. 무심코 선을 넘은 장난이 사람을 다치게 만들고, 이후 앤드류의 분노는 통제 불능 상태로 치닫습니다. 심리학 분야에서는 반복적인 트라우마 노출이 감정 조절 능력을 저하시킨다는 연구 결과가 꾸준히 발표되어 왔습니다([출처: 미국심리학회 APA](https://www.apa.org)). 앤드류의 폭주는 이 맥락에서 읽히면 단순한 악당의 탄생이 아니라, 감당할 수 없는 환경과 감당할 수 없는 힘이 충돌한 결과로 보입니다.
제 경험상 이런 흑화 서사가 설득력을 가지려면 전반부의 감정 축적이 탄탄해야 합니다. 크로니클의 경우, 전반부는 그 역할을 충분히 해냅니다. 문제는 후반부입니다. 앤드류가 약값을 마련하기 위해 강도를 저지르고, 이후 도심에서 건물을 파괴하는 장면으로 넘어가는 과정이 꽤 급격합니다. 섬세하게 쌓아올린 심리 드라마가 블록버스터식 CG 파괴 장면으로 전환되는 속도가 지나치게 빠르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크로니클에서 놓치면 아쉬운 핵심 포인트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파운드 푸티지 기법이 히어로물과 결합했을 때 생기는 독특한 현장감과 그 한계
- 초능력 발현 이후 세 인물의 서로 다른 반응과 심리 변화 비교
- 앤드류의 흑화 과정에서 환경적 요인이 어떻게 층층이 쌓이는지
- 후반부 블록버스터식 전환이 전반부 드라마와 얼마나 잘 연결되는지
크로니클은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무거운 영화였습니다. 저는 가볍게 초능력 판타지를 즐기러 들어갔다가, 소외와 결핍이라는 주제 앞에서 한동안 멍하니 있었습니다. 아직 이 영화를 보지 않으셨다면, 히어로물이라는 선입견을 내려놓고 청소년 심리 드라마를 본다는 마음으로 접근해보시길 권합니다. 파운드 푸티지 특유의 화면 흔들림이 불편하게 느껴지신다면 자막 자막만 크게 키워놓고 보시는 것도 방법입니다. 후반부의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앤드류라는 인물은 분명히 오래 기억에 남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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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k9Tp-cTNm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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