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눈 먼 자들의 도시 (원작 비교, 격리 수용소, 인간 본성)

노벨문학상 수상작을 원작으로 한 영화가 오히려 원작의 깊이를 훼손했다는 평가를 받는다면 어떤 기분일까요. 저도 처음 이 영화를 보고 나서 그 묘한 불쾌감의 정체를 한동안 정리하지 못했습니다. 디스토피아 장르를 좋아해서 자신 있게 틀었던 영화였는데, 본 뒤의 감정은 예상과는 꽤 달랐습니다. 친구나 애인이 다시 보자고한다면 다시 볼 의향이 있는 영화였습니다.

## 원인 불명의 전염병이 무너뜨린 일상

영화는 도시 한복판에서 갑자기 시야가 새하얗게 변하는 '백색 실명(White Blindness)'으로 시작됩니다. 여기서 백색 실명이란 외부 빛이 차단되어 암흑이 찾아오는 일반적인 실명과 달리, 눈앞이 눈부신 흰빛으로 가득 차 아무것도 볼 수 없게 되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의학적으로 유사한 개념으로는 피질 시각 장애(Cortical Visual Impairment)가 있는데, 이는 시신경 자체가 아니라 뇌의 시각 피질이 손상되어 시력을 잃는 증상을 가리킵니다. 쉽게 말해 눈은 멀쩡하지만 뇌가 시각 정보를 처리하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영화 속에서 이 실명은 순식간에 도시 전체로 번져 나갑니다. 처음 이 장면을 봤을 때 제가 느낀 건 공포보다는 당혹감에 가까운 감각이었습니다. 평범하게 신호를 기다리던 동양인 남성이 갑자기 아무것도 보지 못하게 되고, 그 틈에 옆에 있던 남자가 그를 돕는 척 차를 훔쳐 달아납니다. 문명이 붕괴할 때 가장 먼저 드러나는 건 이기심이라는 걸, 영화는 개봉 10분도 안 돼서 보여줍니다.

이 영화가 원작으로 삼은 소설은 포르투갈 작가 주제 사라마구(José Saramago)가 1995년 발표한 동명 소설입니다. 사라마구는 이 작품으로 1998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했으며([출처: 노벨상 공식 홈페이지](https://www.nobelprize.org)), 소설은 단순한 재난 서사가 아니라 사회 시스템과 인간 도덕성의 본질을 해부하는 묵직한 철학 소설로 평가받습니다. 제가 직접 읽어보니, 원작은 등장인물에게 이름조차 부여하지 않는 독특한 서사 기법을 사용해 인물을 개인이 아닌 인류의 단면으로 다루고 있었습니다.

## 격리 수용소에서 드러나는 인간 본성

정부는 감염자들을 구 정신병원 건물에 격리 수용합니다. 이 수용소 장면이 영화의 핵심이자, 동시에 가장 논란이 되는 부분입니다. 유일하게 시력을 유지한 의사의 아내 줄리아는 남편 마크와 함께 수용소에 들어가 눈이 보이는 척 생활하며 내부 질서를 혼자 떠받칩니다.

제가 이 장면들을 따라가면서 가장 숨이 막혔던 건 그녀의 고독감이었습니다. 모두가 앞을 보지 못하는 공간에서 혼자만 모든 것을 목격해야 하는 상황. 그 정신적 부담감은 단순한 신체적 위험보다 훨씬 잔인하다고 느꼈습니다. 사회심리학에서 말하는 방관자 효과(Bystander Effect)와 정반대의 상황이 여기서 벌어집니다. 방관자 효과란 주변에 사람이 많을수록 개인이 책임을 덜 느끼고 행동하지 않는 심리 현상을 뜻합니다. 그런데 줄리아는 아무도 볼 수 없는 상황에서 혼자 모든 것을 보고 있기 때문에, 오히려 모든 책임이 그녀 한 사람에게 집중됩니다.

수용소 안에서는 총을 손에 넣은 불량배 집단이 등장해 음식을 독점하고 폭력으로 다른 수용자들을 지배합니다. 먼저 귀중품을 요구하고, 그다음에는 여성들을 요구합니다. 이 과정은 거의 모든 실제 재난 상황에서 반복적으로 관찰되는 권력 재편 과정과 닮아 있습니다. 실제로 재난 상황에서 나타나는 사회적 붕괴 패턴을 분석한 연구에 따르면, 폭력 집단이 자원을 통제하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격리 상황 기준 평균 72시간 이내라는 결과도 있습니다([출처: 미국 국립의학도서관 PubMed](https://pubmed.ncbi.nlm.nih.gov)).

영화가 비판받는 지점도 정확히 여기입니다. 수용소 내 성범죄, 오물, 폭력을 묘사하는 방식이 필요 이상으로 길고 직접적입니다. 저도 솔직히 이 부분은 예상 밖이었습니다. 인간의 타락을 보여주려면 그 과정을 담아야 하지만, 어디까지 담아야 '충분히' 전달되고 어디서부터는 단순한 자극이 되는지의 경계를 이 영화는 꽤 자주 넘어서는 느낌이었습니다.

영화가 원작과 비교해 특히 약해지는 지점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원작이 등장인물의 이름을 삭제해 보편적 인류의 이야기로 만든 반면, 영화는 캐릭터에 이름을 부여해 개인 서사에 머무르는 경향이 있습니다.
- 원작의 문학적 장치인 의식의 흐름 기법(Stream of Consciousness)이 영상으로 옮겨지면서 내면 묘사가 거의 사라집니다.
- 수용소 폭력 장면의 묘사 강도가 원작의 철학적 문제 제기보다 시각적 자극에 더 치우쳐 있습니다.

## 영화가 진짜 말하고 싶었던 것

영화 후반부, 수용소에서 화재가 발생하고 사람들은 밖으로 쏟아져 나옵니다. 그런데 그 바깥도 이미 황폐해진 도시입니다. 수용소 밖에 있다고 해서 안전한 세상이 있는 게 아니었던 것입니다. 이 장면에서 제가 느낀 건, 이 영화가 궁극적으로 하고 싶은 말은 '어디에 있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보느냐'에 관한 이야기라는 점이었습니다.

백색 실명이라는 장치는 사실 은유입니다. 우리가 눈을 뜨고 있으면서도 외면하는 것들, 보고 싶지 않아서 보지 않는 것들에 대한 은유. 제 경험상 이런 알레고리(Allegory) 구조를 가진 영화는 감독의 의도를 이해하는 순간 전혀 다른 무게로 다가옵니다. 알레고리란 표면적인 이야기 뒤에 별도의 철학적·도덕적 의미를 숨겨두는 서사 기법으로, 이 영화에서는 '실명'이 곧 인간의 도덕적 무감각을 상징합니다.

영화가 기술적으로 아쉬운 부분도 있습니다. 백색 실명을 시각화하기 위해 화면 전체를 하얗고 흐릿하게 처리하는 연출 기법이 반복적으로 등장하는데, 이 기법은 작품의 몽환적 분위기를 강조하려는 의도였겠지만, 제가 보기에는 오히려 눈의 피로감을 유발해 극에 집중하기 어렵게 만드는 역효과가 있었습니다. 의도와 효과가 어긋난 연출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결국 이 영화는 잘 만든 영화라고 단언하기는 어렵지만, 보고 나서 한동안 무언가를 생각하게 만드는 영화라는 점은 분명합니다. 재난 상황에서 인간이 얼마나 빠르게 야만으로 돌아갈 수 있는지, 그리고 그 야만 속에서도 끝끝내 타인을 지키려는 사람이 존재한다는 것. 그 두 가지가 동시에 사실이라는 걸 영화는 꽤 거칠게, 하지만 분명히 보여줍니다.

평소 디스토피아 장르나 인간 본성을 다룬 이야기에 관심이 있다면, 영화보다는 원작 소설부터 읽어보실 것을 권합니다. 영화는 그 다음에 봐야 원작이 담고 있던 것들이 얼마나 많이 탈락했는지가 보이고, 그 비교 자체가 또 다른 사유의 계기가 될 수 있습니다.

---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_SDk30bNjsg


소개 및 문의 · 개인정보처리방침 · 면책조항

© 2026 블로그 이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