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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웨이 리뷰 (라이벌 관계, 전쟁 서사, 블록버스터 한계)

네 벌의 군복을 입은 남자가 마지막에 도착한 곳이 노르망디 해변이라면, 믿을 수 있겠습니까? 실화에서 모티브를 얻은 이야기라는 말을 들었을 때 저도 처음엔 반신반의했습니다. 평소 역사의 소용돌이에 휩쓸린 개인의 운명을 다룬 영화를 즐겨 보던 저에게, 강제규 감독의 <마이웨이>는 시작부터 꽤 강렬한 첫인상을 남겼습니다.

## 경성에서 노르망디까지, 두 남자의 라이벌 관계

영화는 일제강점기 경성을 배경으로 시작합니다. 조선인 마라토너 김준식과 일본 총독의 손자 타츠오는 어린 시절부터 달리기로 맞붙는 라이벌로 그려집니다. 제가 직접 봤을 때 이 초반부는 꽤 탄탄했습니다. 두 소년이 골목길을 내달리는 장면에서는 단순한 스포츠 경쟁이 아니라 식민지 지배라는 구조적 불평등이 은근히 깔려 있어서, 그 긴장감이 고스란히 전달됐습니다.

그런데 이 우정은 오래가지 못합니다. 타츠오의 우승 축하 연회 도중 테러 사건이 발생하고, 준식의 아버지가 그 누명을 뒤집어쓰면서 두 사람은 적이 됩니다. 이 지점에서 영화는 이른바 내러티브 아크(Narrative Arc)를 본격적으로 작동시킵니다. 내러티브 아크란 이야기 전체를 관통하는 감정적 흐름과 갈등 구조를 의미하는데, <마이웨이>의 경우 이 아크가 '적대→공존→연대'라는 고전적인 틀 위에 세워져 있습니다.

그 이후 인력거꾼으로 전락한 준식과 일본 마라톤 대표로 성장한 타츠오가 대회에서 재회하고, 준식이 우승을 차지합니다. 솔직히 이 장면은 예상 밖이었습니다. 단순한 승부 이상의 무게감이 느껴졌고, 준식이 결승선을 끊는 순간 억눌린 감정이 한꺼번에 올라오는 듯했습니다. 그러나 바로 그 직후 폭동이 발생하고, 준식을 비롯한 조선인들이 일본군으로 강제 징집되면서 이야기는 본격적인 전쟁 서사로 이동합니다.

두 사람이 함께 거친 전장의 궤적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일제강점기 조선 → 마라톤 대회 재회 및 강제 징집
- 만주·몽골 전선 → 일본군으로 참전, 라이벌 관계 심화
- 소련군 포로 수용소 → 강제 노동과 내면 붕괴
- 독소전쟁 전선 → 소련군 군복 착용, 생존을 위한 선택
- 프랑스 노르망디 → 독일군 군복 차림으로 연합군과 조우

## 전쟁 서사가 놓쳐버린 것들

제 경험상 이런 대규모 전쟁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건 스펙터클(spectacle)이 아니라 그 안에 있는 인간입니다. 스펙터클이란 관객의 시각과 감각을 압도하는 대형 전투 시퀀스나 폭발 장면 등을 의미하는데, <마이웨이>는 이 부분에서 확실히 한국 영화 역사상 손에 꼽히는 수준을 보여줍니다. 그러나 문제는 그 이면입니다.

포로 수용소 장면에서 준식의 친구 종대가 전쟁의 참혹함에 서서히 광기로 무너지는 모습은 꽤 인상적이었습니다. 반면 주인공 준식은 어떤 극한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습니다. 살인을 거부하고, 탈영을 시도하다 동료를 살리기 위해 자발적으로 돌아오고, 끝까지 인간성을 지킵니다. 이 일관성이 오히려 독이 됩니다. 영화 비평 용어로 이를 원-다이멘셔널 캐릭터(One-Dimensional Character)라고 합니다. 쉽게 말해 단 하나의 속성만 강조되어 인간적인 복잡함이 느껴지지 않는 인물 유형입니다. 준식은 고통받지만 흔들리지 않고, 분노하지만 무너지지 않습니다. 그 결과 감정 이입보다는 관전하게 되는 거리감이 생깁니다.

타츠오는 그나마 내면 변화가 있습니다. 제국주의 이념으로 가득 찬 인물에서 전쟁의 무의미함을 깨달아가는 과정은 설득력이 있었습니다. 다만 이 변화 역시 충분히 쌓이기 전에 급하게 전개되는 경향이 있어, 그 울림이 반감되는 느낌이었습니다.

영화의 또 다른 약점은 개연성입니다. 카타르시스(catharsis)는 이야기가 충분히 쌓인 뒤에 터져야 효과가 있습니다. 카타르시스란 극적 긴장이 해소되며 관객이 감정적으로 정화되는 경험을 말하는데, <마이웨이>는 감정적 설득 없이 눈물을 유도하려는 장면들이 반복되면서 이 순간들이 억지스럽게 느껴졌습니다. 방대한 서사를 2시간 남짓에 욱여넣다 보니 각 장면의 감정적 밀도가 고르지 않습니다. 한국영상자료원에 따르면 강제규 감독의 전작 <태극기 휘날리며>는 개봉 당시 1,174만 관객을 동원하며 흥행 공식을 만들었는데([출처: 한국영상자료원](https://www.koreafilm.or.kr)), <마이웨이>는 그 공식을 그대로 반복하려다 오히려 예측 가능한 신파 구조에 갇혀버린 인상입니다. 제가 보기엔 <태극기 휘날리며>의 감동은 두 형제 사이의 좁고 깊은 감정에서 나왔는데, <마이웨이>는 그 범위를 전 세계 전장으로 넓히면서 오히려 감정의 밀도가 희석된 것 같습니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의 자료에 따르면 2000년대 이후 한국 대작 전쟁 영화의 평균 제작비는 100억 원대를 상회하며 서사 완성도보다 물량 경쟁에 치중하는 경향이 뚜렷하게 나타났습니다([출처: 한국콘텐츠진흥원](https://www.kocca.kr)). <마이웨이>는 그 흐름의 정점에 있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 그럼에도 이 영화를 기억하는 이유

비판을 길게 늘어놓았지만, 솔직히 말하면 저는 이 영화를 끝까지 몰입해서 봤습니다. 준식이 노르망디 해변에 홀로 서 있는 마지막 장면은, 그 모든 과잉과 신파를 걷어낸 자리에서 묘한 숭고함을 건네줬습니다. 수만 킬로미터를 강제로 떠돌며 네 벌의 군복을 입었지만 끝내 자신을 잃지 않은 한 인간의 이야기로서, 영화는 분명히 하고 싶은 말이 있었고 그 말은 어렴풋이 들렸습니다.

전쟁의 무의미함 속에서 인간성을 지키는 것이 가능한가, 그리고 그게 가능하다면 무엇이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가. 이 질문은 영화가 끝난 뒤에도 한동안 머릿속을 맴돌았습니다. <마이웨이>가 아쉬운 작품인 건 분명하지만, 이 질문 하나만으로도 한 번쯤 볼 이유는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전쟁 영화 장르에 관심이 있다면, 이 작품과 함께 <태극기 휘날리며>나 소련-독일 전선을 다룬 다른 작품들과 나란히 놓고 비교해 보시는 것도 꽤 의미 있는 경험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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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__47Xw1a9j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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